‘답’과 ‘질문’
새로운 것을 만들 때 발상의 전환을 정답을 찾듯이 바라보는 것은 많은 이들이 하는 실수입니다.
‘답’이 아닌 ‘질문’부터 시작해야 하죠. 스탠퍼드 대학에서 창의성을 가르치는 티나 실리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질문은 모두 ‘틀’이며 답은 그 안에 들어간다, 틀을 바꾸면 해결책의 폭이 극적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 관점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생각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끄는 방법을 ‘재구성(reframing)’이라고 합니다.
질문을 바꾼다는게 감이 안 잡히신다면 많은 분들이 익숙하실만한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고층건물 열풍이 불었고 자연스레 엘리베이터의 설치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렸다는 것입니다. 고객들의 민원은 빗발쳤지만 당장 더 빠른 엘리베이터를 개발해 설치할 여유는 없었죠.
이때 한 젊은 직원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붙이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외모를 점검하던 승객들은 엘리베이터 안의 시간을 지루해 하지 않았고, 더는 엘리베이터가 느리다고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는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불만이 많다.’라는 같은 문제점을 놓고
‘엘리베이터를 더 빠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을 짧게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새로운 답을 내놓은 사례입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이제 질문을 바꿔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은 잡히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야 더 나은 답을 기대할 수 있는걸까요? 단순히 바꾸기만 한다고 장땡이 아닐텐데 말이죠.
‘컨셉 수업’에서 말하는 ‘좋은 질문’에 대한 정의와, 어떻게 기존의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재구성 하는 지에 대해 알아봅시다.
좋은 질문이란
‘컨셉 수업’의 호소다 다카히로는 좋은 질문은 축구 경기의 절묘한 패스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좋은 패스는 패스를 받는 사람이 다음 플레이를 수월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여유로운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해야하며, 그 플레이가 결정적인 찬스로 이어지도록 위협적인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이루어져야 하죠.
키워드는 ‘자유로운 공간’과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좋은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방식의 답변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자유도’가 있어야 하며, 답을 내놓았다면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어야 하죠.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야를 넓히는 6가지 재구성법
그렇다면 이 ‘좋은 질문’을 만드는 재구성의 기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컨셉 수업’에서 제시하는 6가지 재구성 기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재구성하고 싶은 질문을 하나 적어놓은 후 하나씩 적용해보며 같이 읽어 보시죠.
1. 전체에 관한 질문: 부분보다 전체를 본다면?
문제의 대상을 독립된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전체로 시선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1923년 처음 개최되어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24시간 동안 주어진 경주로를 누가 더 많이 도는지를 겨루는 대회입니다.
2006년 이 대회를 우승한 아우디의 R10 TDI는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여지껏 좋은 성적을 올리던 가솔린 엔진이 아닌 디젤 엔진을 사용해, 대회 첫 디젤차의 우승을 만든 것입니다.
이 결정 뒤에는 아우디 수석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질문이 있었죠.
‘다른 차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우승할 수 있을까?‘
가장 빠른 차가 아니더라도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피트인(정비, 연료 보충을 위해 피트로 들어오는 것) 횟수를 줄여야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디젤 엔진은 연비 효율을 높여 피트인 횟수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죠. 그 결과 2006년을 시작으로 R10 TDI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우디의 엔지니어는
‘더 빠른 차를 만드려면?’이라는 부분에 관한 질문을
‘레이스 전체에서 이길 수 있는 차는?’이라는 전체에 관한 질문으로 바꾸어 새로운 해답을 내놓은 것이죠.
2. 주관적인 질문: 당신이 유독 고집하는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을 당시 한 말이죠.
여러분이 가전 회사에서 냉장고를 개발하는 부서로 배치되었다 생각해보죠. 새로운 냉장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가장 먼저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와 다른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을 길러보고 싶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식물용 냉/온장고’를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재에서 가볍게 와인 한잔을 즐기거나, 샤워 직후 시원한 바나나 우유를 바로 먹고 싶다면 집안 어디에나 둘 수 있는 모듈형 냉장고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요즘은 무엇이든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시대죠. 그러나 주관적인 시각은 절대 데이터로 도출할 수 없습니다. 상식적인 질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주관으로 시작해 봅시다.
3. 이상적인 질문: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은 어떤 모습인가?
비즈니스에서 맞닥뜨리는 질문은 대부분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현실적인 질문은 때때로 시야를 눈 앞에 있는 대상으로 한정시키죠. 현실 너머의 이상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구글은 이 기법을 적극 활용합니다. 기존 해결책보다 10배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묻는 ‘10XQuestion’ 이 대표적이죠.
‘매년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10%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안전 표지판 설치를 늘리거나, 교통 단속을 더 자주 한다 같은 기존 방안의 연장선상에서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질문을 ‘인간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바꾼다면, 이제는 ‘완전 자율주행’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밖에 없죠.
4. 동사로 된 질문: 행동에 주목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명사’로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은 어때야 할지, ‘자동차’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등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사고 방식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에드워드 드 보노는 이를 ‘말의 경직성’이라고 불렀는데요. 말의 경직성은 ‘분류’의 경직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사물을 보는 시각의 경직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명사가 아닌 ‘동사’를 디자인 해야 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에서 캐스 홀먼이라는 디자이너는 미대생들에게 ‘새 컵을 디자인 하자’라는 과제를 내었다고 합니다.물론 전혀 새로운 발상은 없었죠.
그러나 질문을 ‘물을 운반하는 새로운 방식을 디자인 하자’라고 바꾸자, 스펀지에 물을 흡수시켜 운반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한 수업에서는 ‘새로운 스쿨버스’가 아닌 ‘학교에 가는 새로운 방법’을 디자인 하라고 했더니, 로켓,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창의성의 폭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5. 파괴하는 질문: 깨부숴야 할 지루한 상식은?
‘무엇을 만들지’ 모르겠다면 ‘무엇을 부술지’를 정해보는건 어떨까요?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레이스팅스는 dvd를 빌렸다가 40$의 연체료를 낸 경험을 바탕으로 ‘연체료라는 dvd 대여 업계의 상식을 부수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때로는 창조에 대한 열망보다 파괴에 대한 열망이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6 . 목적에 관한 질문: 그것이 수단이라면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에 여러분이 속한 업계를 대입해 봅시다.
닌텐도는 게임이 수단이라면 목적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 ‘가족과의 시간을 되찾겠다’라는 답을 내었습니다.
그래픽과 처리 속도로 승부하던 게임 업계에 사회적 가치를 컨셉으로 삼은, 획기적인 일이었죠.
내가 만드려는 것이 수단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해봅시다.
보너스) 지금까지의 과정을 역행해 봅시다
위의 과정들은 모두 평소의 시야와는 다른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꼭 일방통행일 필요는 없죠.
전체가 너무 막연하다면 부분으로, 주관이 너무 치우친다면 객관으로 바꿔보는 겁니다.
렌즈를 바꿔끼듯 유연한 방향전환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 봅시다!